서로 기다리는 주의 만찬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찬송: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핵심 구절: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고린도전서 11장 28절
*Q.T 본문
1. 모임이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함께 모인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매우 강하게 말합니다.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 고린도전서 11장 17절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모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형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찬을 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주님의 몸을 바르게 기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는 함께 모였지만 서로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함께 식탁에 앉았지만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주의 만찬을 행했지만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유익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상처와 해가 되는 사람입니까?
2. 분쟁과 파당은 성찬의 의미를 무너뜨립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분쟁이 있었습니다. 파당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함께 모였지만 실제로는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 고린도전서 11장 20절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모여서 먹을 때, 어떤 사람은 자기 음식을 먼저 먹고 배부르게 취했지만, 어떤 사람은 배고픈 채로 남겨졌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먼저 와서 풍성히 먹고 마셨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늦게 와서 부끄러움과 소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은혜로 사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차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배려가 아니라 자기만족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하나 됨이 아니라 분열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성찬은 형식만으로 성찬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이 사라진 성찬은 주의 만찬이 아니라 자기의 만찬이 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지 말라
바울은 매우 날카롭게 책망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 고린도전서 11장 22절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단순한 예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연약한 지체도 주님께서 피로 사신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늦게 오는 사람도, 가진 것이 적은 사람도 주님의 몸 된 공동체 안에서는 존귀한 지체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과 태도는 주님의 몸을 아프게 합니다.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분위기는 교회를 세우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형편을 무시하는 행동은 복음의 정신과 어긋납니다.
성찬의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누가 더 먼저 왔느냐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십자가 은혜 앞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4.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잃어버린 성찬의 본질을 다시 가르칩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
성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성찬은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잡히시던 밤에 떡을 떼셨습니다.
배신과 고난이 가까이 있던 그 밤에, 주님은 자신을 내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성찬은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내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5.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11장 26절
성찬은 과거를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찬은 복음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말없이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피로 새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찬은 과거의 십자가와 미래의 재림을 동시에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무게와 다시 오실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6.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지 말라
바울은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11장 27절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라는 말은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전혀 없는 사람만 성찬에 나아오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합당하지 않은 태도는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성찬의 의미를 잊고 자기만족의 식사처럼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무시하고 형제를 부끄럽게 하는 태도입니다.
십자가 은혜를 기억한다 하면서도 사랑과 배려 없이 행동하는 태도입니다.
성찬은 죄인을 초대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회개 없는 교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7.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바른 자세를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 고린도전서 11장 28절
성찬 앞에서 우리는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내 마음에 교만은 없는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부끄럽게 한 일은 없는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회개와 감사로 나아가고 있는가?
자기를 살피는 것은 자기 정죄가 아닙니다.
자기를 살피는 것은 은혜 앞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성찬은 나를 절망시키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나를 십자가 앞으로 다시 부르시는 자리입니다.
나를 주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하시는 자리입니다.
8. 주의 몸을 분별하라
바울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11장 29절
주의 몸은 먼저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찬은 개인의 경건만 확인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지체들을 존중하고 있습니까?
나는 약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나는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의 몸을 분별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바르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십자가로 하나 된 형제자매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9. 서로 기다리라
바울이 제시한 해결책은 매우 단순합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 고린도전서 11장 33절
서로 기다리라.
이 짧은 권면 안에 성찬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기다림은 사랑입니다.
기다림은 배려입니다.
기다림은 공동체를 세우는 태도입니다.
기다림은 나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거창한 신학 지식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자기 배고픔은 알았지만 다른 사람의 배고픔은 몰랐습니다.
자기 만족은 챙겼지만 공동체의 아픔은 보지 못했습니다.
성숙한 공동체는 서로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먼저 온 사람이 늦게 온 사람을 기다리고,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배려하며, 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세워주는 공동체입니다.
10. 오늘의 한 줄 묵상
주의 만찬은 나만 배부르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의 몸을 기억하며 서로를 기다리고 세우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저를 구원하시고,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나의 만족과 편안함만 먼저 구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사람을 기다리지 못했고, 누군가의 아픔과 부족함을 깊이 살피지 못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찬 앞에서 자기를 살피는 겸손을 주시고, 십자가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주의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나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기억하게 하시고, 그 은혜로 하나 된 형제자매를 더욱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를 부끄럽게 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기다리는 곳이 되게 하소서.
먼저 가진 사람이 나누고, 먼저 온 사람이 기다리며, 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군림이 아니라 섬김으로,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영과 진리의 예배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을 위한 질문
- 내 삶과 공동체 안에서 칭찬받지 못할 모습은 무엇입니까?
- 반복적으로 분쟁과 파당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며, 나는 그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 성찬에 참여할 때 나는 주님의 몸과 피를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 내가 기다려 주어야 할 사람, 배려해야 할 사람,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오늘 내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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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오늘 본문은 주님의 몸 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라는 성찬의 정신을 묵상하게 합니다. 이 찬송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된 성도들이 사랑으로 서로를 기다리고 세워가기를 결단하기에 잘 어울립니다.
🌱 묵상 팁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음 세 표현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주의 만찬 — 자기를 살피고 — 서로 기다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성찬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만 앞서지 않고 형제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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