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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 고린도전서 9:1-18 묵상

복음을 위하여 권리를 내려놓는 사람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

본문: 고린도전서 9장 1–18절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핵심 구절: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고린도전서 9장 12절


*Q.T 본문

고린도전서 15(고전 9장 1-1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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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와 권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루며, 지식이 있는 성도들이 자신의 자유를 남용하여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9장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로 듭니다.

바울에게도 자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였고, 복음을 전한 사람이었으며,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열매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도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의 자유와 권리는 언제나 복음과 사랑 안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누릴 수 있다고 해서 다 누려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형제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2.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됨을 분명히 말합니다

바울은 본문 시작에서 네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 고린도전서 9장 1절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자유인입니다.
그는 사도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그의 복음 사역의 열매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자기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권리가 분명히 있음을 말한 뒤, 그 권리를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권리가 없는 사람이 내려놓는 것과 권리가 있는 사람이 내려놓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위해 그 권리를 스스로 제한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3. 고린도 교회는 바울 사도직의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 고린도전서 9장 2절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주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자체가 바울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인장과 같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 안에 나타난 복음의 열매를 말합니다.

참된 사역자의 증거는 자기 이름의 크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박수도 아닙니다.
그를 통해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창문과 같았습니다. 창문은 자신을 보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을 통과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를 드러내는 무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4. 바울에게도 마땅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 고린도전서 9장 4절

그에게는 먹고 마실 권리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도 있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을 권리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권리들이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군인이 자기 비용으로 복무하지 않고, 포도원을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먹으며, 양 떼를 기르는 사람이 그 젖을 먹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율법도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 고린도전서 9장 9절

수고한 자가 그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은 정당합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가 교회의 후원을 받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핵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 뒤,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말합니다.


5.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쓰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고린도전서 9장 12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후원 관계에는 상호적 의무와 영향력이 따라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부유한 성도들의 후원을 받았다면, 그들의 기대와 압력에 휘둘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공평함을 전해야 하는 자리에서 특정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연약한 자들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해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중심이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6. 권리를 내려놓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네 권리를 지켜라.”
“손해 보지 마라.”
“네 몫은 반드시 챙겨라.”
“내 자유는 내가 누리는 것이다.”

물론 권리는 중요합니다. 부당하게 억압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권리를 복음보다 앞세우지 않습니다.

바울이 권리를 내려놓은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약해서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권리를 주장할 줄도 알지만, 사랑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을 줄도 압니다.

내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언제나 믿음은 아닙니다.
때로는 복음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연약한 사람을 위해 내가 내려놓는 것이 더 큰 믿음일 수 있습니다.


7. 복음 전파는 바울의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 고린도전서 9장 16절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선택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명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그는 주님께 받은 부르심을 무겁게 여겼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자신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자랑은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나는 복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내 삶에서 복음은 우선순위입니까, 아니면 필요할 때만 꺼내는 장식입니까?
내 권리와 편안함보다 복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8. 값없이 받은 은혜, 값없이 전하는 삶

바울은 자신의 상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 고린도전서 9장 18절

바울은 복음을 값없이 전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기쁨이었고, 그의 상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도 값없이 주어진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권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성도는 이제 묻습니다.

“주님을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복음에 장애가 되는 내 태도와 습관은 무엇인가?”
“내 권리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9.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 삶

바울은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되는 것보다, 주님께 쓰임 받는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권리를 많이 누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 쓰임 받는 삶입니다.

나의 지식, 나의 자유, 나의 권리, 나의 영향력은 모두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내가 움켜쥐면 나를 높이는 도구가 되지만,
주님께 드리면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깨끗한 창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0. 오늘의 한 줄 묵상

성숙한 성도는 자신의 권리를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저를 살려 주시고,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 내 권리와 자유를 움켜쥐고, 복음보다 내 편안함과 자존심을 더 앞세웠습니다.
주님, 저의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장애가 되는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절제하게 하시고, 연약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사랑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값없이 받은 은혜를 값없이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깨끗한 창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나의 권리보다 복음을 더 귀하게 여기며, 주님께 쓰임 받는 깨끗한 그릇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을 위한 질문

  1.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 됨과 권리를 먼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까?
  2.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범사에 참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내 삶에서 복음에 장애가 될 수 있는 태도나 습관은 무엇입니까?
  4. 내가 정당하게 누릴 수 있지만, 사랑과 복음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권리는 무엇입니까?
  5. 나는 오늘 누구에게 복음의 장애물이 아니라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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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오늘 본문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찬송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묵상하며, 나 역시 복음을 위해 내 권리와 자유를 내려놓는 삶을 결단하기에 잘 어울립니다.


🌱 묵상 팁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음 세 표현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권리 —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 값없이 전하고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 권리가 복음의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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