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본문: 시편 10편 1–18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0편 1절
*Q.T 본문
“어찌하여”로 시작하는 믿음의 탄식
시편 10편은 표제가 없는 시편입니다. 그러나 시편 9편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시입니다. 시편 9편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성격을 가진다면, 시편 10편은 악인의 횡포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하며 호소하는 비탄시의 성격을 가집니다.
시편 10편의 첫 단어는 “어찌하여”입니다.
시인은 묻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십니까?”
이 질문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믿기에, 하나님이 가난한 자와 압제당하는 자를 보시는 분임을 믿기에 시인은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믿음은 세상의 불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악인의 득세를 보며 하나님께 정직하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탄식이 하나님을 떠나는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1. 악인은 교만하여 약한 자를 압박합니다
시인은 악인의 모습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악인의 특징은 교만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꾀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약한 사람을 향한 압제로 나타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련한 자”는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회적으로 약하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하며, 억울함을 호소해도 쉽게 외면당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바로 그런 사람을 압박합니다.
악은 언제나 약한 사람을 향합니다.
힘 있는 자에게는 비굴하고, 힘없는 자에게는 잔인합니다.
보이는 곳에서는 정의로운 척하지만, 은밀한 곳에서는 가련한 자를 무너뜨립니다.
시인은 이것을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하나님 앞에 악인의 행태를 낱낱이 아룁니다. 믿음의 사람은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분노로 악을 갚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탄식은 불의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입니다.
2. 악인은 자기 욕심을 자랑합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악인을 묘사합니다.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악인은 욕심이 있는 사람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합니다. 탐욕을 성공처럼 포장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처럼 여겨지며,
수단과 방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게 평가될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욕심 자체가 아니라, 욕심을 자랑하는 마음입니다.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악인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이것이 악인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을 가볍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지 않으신다고 여기기 때문에 죄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서 지워 버렸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가장 깊은 문제는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3. 악인은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10편에서 악인은 이렇게 착각합니다.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악인은 하나님이 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셨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더 대담하게 악을 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인의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련한 자의 눈물을 보십니다.
외로운 자의 신음을 들으십니다.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의 아픔을 감찰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악인이 잘되는 현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립니다. “정말 하나님이 보고 계실까?”라는 질문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0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를 뿐입니다.
4. 하나님께 “일어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시인은 악인의 행태를 고발한 후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이 기도는 매우 절박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일어나 달라고 합니다. 손을 들어 달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잠들어 계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무관심하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시인의 마음에는 지금 당장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일어나 주십시오.”
“주님, 더 이상 약한 자들이 짓밟히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이 불의를 그냥 두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믿음이 없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이심을 믿기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심판자이심을 믿기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5. 하나님은 외로운 자와 고아를 도우십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이 말씀은 시편 10편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믿음은 여기에서 회복됩니다. 상황은 아직 완전히 바뀌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악인은 여전히 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가련한 자의 고통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의 의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고아는 단순히 부모가 없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어 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십니다.
6. 악인의 팔을 꺾으시는 하나님
시인은 하나님께 강하게 간구합니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팔은 힘을 상징합니다. 악인의 팔을 꺾어 달라는 것은 악인이 더 이상 약한 자를 억압하지 못하도록 그 힘을 꺾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한 개인적 복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악인이 더 이상 가련한 자를 사냥하지 못하도록, 무죄한 자를 죽이지 못하도록, 외로운 자를 짓밟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개입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불의를 모른 척해서도 안 됩니다.
약한 자의 고통을 영적인 말로만 덮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악이 멈추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무너지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팔을 꺾으시고, 고통받는 자를 보호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7.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십니다
시편 10편의 결론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악인은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길이 견고하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영원무궁하신 분은 악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권세는 지나갑니다.
악인의 번영도 끝이 있습니다.
교만한 자의 말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십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믿음을 붙듭니다. 현실이 아무리 불의해 보여도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악인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약한 자의 울음이 세상에서 묻혀도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우리는 공의를 기다립니다.
8.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
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 여기서 겸손한 자는 하나님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십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드시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대충 듣지 않으십니다. 흘려듣지 않으십니다.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들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시편 10편의 결론입니다. 탄식으로 시작했지만 믿음으로 끝납니다. “어찌하여 멀리 서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늘의 묵상 질문
- 나는 하나님께 “어찌하여”라고 묻고 싶은 현실이 있습니까?
- 내 안에 욕심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려는 마음은 없습니까?
-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여긴 죄는 없습니까?
- 나는 외로운 자, 고아, 압제당하는 자의 아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다”는 고백이 오늘 내 삶에 어떤 힘을 줍니까?
오늘의 결단
오늘 나는 불의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악인의 득세를 보며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하나님께 호소하겠습니다.
내 안의 교만과 욕심을 살피고, 하나님 없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가련한 자와 외로운 자, 압제당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사랑과 책임을 감당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심을 믿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해 일하심을 신뢰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시편 10편의 말씀을 통해 악인이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하는 믿음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불의가 커지고 약한 자들이 짓밟히는 현실을 볼 때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고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제 안에 악인의 마음이 없도록 지켜 주소서.
욕심을 자랑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는 듯 살아가지 않게 하소서.
제 모든 생각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하소서.
외로운 자와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들의 신음을 들어 주소서.
그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악인의 팔을 꺾으시며, 다시는 위협받지 않도록 주의 공의로 일하여 주소서.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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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팁
오늘은 시편 10편 1절과 16절을 함께 묵상해 보십시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먼저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십시오.
“주님,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있습니다.”
“주님,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다음 믿음으로 고백해 보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왕이십니다.”
“주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
탄식은 하나님을 떠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묵상
시편 10편은 “어찌하여”라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탄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악인의 교만과 탐욕을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하나님께 일어나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영원무궁한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처럼 보여도 외로운 자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숨으신 것처럼 느껴져도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의 신음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악인이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고백이 이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여, 이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은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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