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찬송: 196장 〈성령의 은사를〉
핵심 구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 고린도전서 14장 1절
*Q.T 본문
1. 은사의 출발점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지식과 믿음이 뛰어나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 고린도전서 14장 1절
은사는 귀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사랑 안에서 사용될 때 교회를 세웁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은사를 사모했습니다.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기보다 자기 자랑과 영적 우월감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은사를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랑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사랑 없는 은사는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 없는 열심은 사람을 지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 없는 영적 자랑은 공동체를 나누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랑을 따라 흘러가야 합니다.
2.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은사입니다
바울은 방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 고린도전서 14장 2절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은사입니다.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은사입니다.
개인의 신앙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귀한 은사입니다.
바울은 방언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도 방언을 많이 말한다고 고백합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며, 개인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적 예배 안에서의 사용이었습니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면 공동체는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은 세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은사는 개인의 만족에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선물은 결국 공동체를 향해야 합니다.
3. 예언은 교회를 세우는 말입니다
바울은 예언의 목적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 고린도전서 14장 3절
예언은 단순히 미래를 맞히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적 의미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고, 복음의 진리로 현재의 삶을 해석하며, 공동체를 세우는 말씀입니다.
예언은 사람에게 말합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해집니다.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세 단어가 있습니다.
덕을 세움
권면
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죄하고 공격하기 위한 도구도 아닙니다.
참된 예언은 사랑 안에서 사람을 세우고, 진리 안으로 이끌며, 낙심한 사람을 위로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늘 물어야 합니다.
내 말이 사람을 세우고 있는가?
내 권면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내 말이 공동체를 위로하고 있는가?
4. 더 큰 은사의 기준은 교회의 덕입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며 말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고린도전서 14장 4절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웁니다.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바울은 방언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적 예배 안에서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더 큰 은사는 더 신비로운 은사가 아닙니다.
더 큰 은사는 더 화려한 은사가 아닙니다.
더 큰 은사는 공동체를 더 잘 세우는 은사입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의 가치는 눈에 띄는 정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감탄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얼마나 세우는가로 판단됩니다.
내 은사가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까?
내 말과 섬김이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까?
내가 받은 은혜가 나만의 만족으로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5.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방언으로만 말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 고린도전서 14장 6절
복음은 전달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이해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세워져야 합니다.
바울은 피리와 거문고, 나팔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악기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음악이 되지 못합니다.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군대가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 고린도전서 14장 9절
아무리 영적인 말처럼 보여도 듣는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내용을 말해도 공동체가 이해하지 못하면 세워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입니다.
진리를 분명하게 전하는 말입니다.
6.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풍성하기를 구하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고린도전서 14장 12절
고린도 성도들은 영적인 것을 사모했습니다. 그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방향이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은사를 구했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은사를 사용했습니다.
교회의 덕보다 개인의 영적 체험을 더 앞세웠습니다.
바울은 그 열정을 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습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이것이 은사의 방향입니다.
이것이 영적 열심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예배 안에서 은사를 사용하는 기준입니다.
성도는 은사를 사모하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해야 합니다.
7. 영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하라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에게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 고린도전서 14장 15절
신앙은 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과 이해도 함께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은 영적 감동만이 아니라 깨달은 마음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받으십니다.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사용하십니다.
뜨거움만 있고 분별이 없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식만 있고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메마를 수 있습니다.
영과 마음이 함께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이해가 함께해야 합니다.
은혜의 체험과 공동체의 덕이 함께해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령 안에서 뜨겁고, 진리 안에서 분명한 예배입니다.
8. 공동체가 “아멘” 할 수 있는 예배
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축복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아멘”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예배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닙니다.
공적 예배는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안의 말과 기도와 찬양은 공동체가 함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이해하고, 함께 동의하고, 함께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갑니다.
나의 은혜가 공동체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나의 찬송이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성숙한 예배자는 나만 은혜받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함께 은혜받고 함께 세워지는 예배를 사모합니다.
9.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다섯 마디
바울은 아주 강한 비교를 합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 고린도전서 14장 19절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다섯 마디가 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많이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비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세우는 말이 중요합니다.
짧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단순해도 복음을 담은 말,
화려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전하는 말,
그 말이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도 그래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를 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깨달은 마음으로 전하는 진실한 말을 사용하십니다.
10. 오늘의 한 줄 묵상
성령의 은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선물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도록 저를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 은사를 나의 만족과 자랑을 위해 사용하려 했고, 교회의 덕보다 나의 유익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주님, 저의 교만과 미성숙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게 하시고, 특별히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말의 은혜를 주옵소서.
제 말이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랑의 언어로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찬송하고 마음으로 찬송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나의 은혜에만 머물지 않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성숙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묵상을 위한 질문
- 나는 성령의 은사를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덕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 방언과 예언의 차이를 통해 바울이 강조하는 은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 내 말은 사람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운 소음처럼 흩어지고 있습니까?
- 영으로도 기도하고 마음으로도 기도한다는 말씀을 내 예배와 기도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 오늘 내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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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96장 〈성령의 은사를〉
오늘 본문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그 은사가 사랑 안에서 교회를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함을 묵상하게 합니다. 이 찬송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겸손히 구하며,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결단하기에 잘 어울립니다.
🌱 묵상 팁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음 세 표현에 밑줄을 그어 보십시오.
사랑을 추구하며 —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성령님, 제 은사와 말과 기도가 사랑 안에서 교회를 세우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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