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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아카이브 | 책에서 길을 찾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역사적 회심 유형 시리즈/존 비니언

존 버니언: 나의 삶이 곧 '천로역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인물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고 일컬어지는 불후의 명작,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저자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입니다. 책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에서 스티븐 네이는 버니언의 삶을 ‘천로역정의 개인 삶 이야기와 성경’이라는 제목으로 조명하며, <천로역정>이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버니언 자신이 겪었던 처절한 영적 전쟁과 구원의 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자전적 대서사시임을 역설합니다. 그의 회심은 한 순간의 깨달음이 아닌, 죄의식과의 오랜 투쟁, 성경 말씀과의 격렬한 씨름,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점철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주인공 ‘크리스천’이 걸어갔던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1. 베드퍼드의 땜장이, 그 절망적인 영적 투쟁

존 버니언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발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영국의 가난한 땜장이(Tinker)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자서전인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에서 스스로를 청년 시절의 ‘죄인 괴수’였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그의 죄가 살인이나 강도 같은 흉악 범죄는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고 타락했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그리고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회심 여정의 시작은 평온한 확신이 아닌, 영혼을 뒤흔드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저주하는 신성모독적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 그리고 결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몇 년 동안을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특히 그를 괴롭혔던 것은 히브리서 12장 16-17절의 ‘에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후, 눈물로 회개하려 했지만 버린 바 되었다는 이 구절은 버니언에게 자신을 향한 사형선고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순간적인 유혹에 넘어가 그리스도를 ‘팔아버렸고’, 이제는 에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믿었습니다. <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절망의 거인’에게 붙잡혀 ‘의심의 성’ 지하 감옥에 갇히는 장면은, 바로 이 시기 버니언 자신이 겪었던 영적 절망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그의 초기 영적 경험은 이처럼 죄의 무게에 짓눌려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멸망의 도시’에 갇힌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2. 검과 방패가 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이 깊고 어두운 절망의 터널을 버니언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성경은 유일한 교과서이자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성경은 단순히 위로와 교훈을 주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살아있는 전쟁터였습니다.

버니언의 마음속에서는 성경의 서로 다른 구절들이 마치 살아있는 군사처럼 서로 싸웠습니다. 한편에서는 그를 정죄하고 절망으로 몰아넣는 말씀들(‘에서’의 이야기나 심판에 관한 구절들)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게 소망과 용서를 약속하는 은혜의 말씀들이 나타나 그를 변호하고 지켜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말씀이 떠올라 잠시 평안을 얻으면, 곧바로 그를 정죄하는 다른 구절이 나타나 그 평안을 앗아갔습니다. 이 영적 전쟁의 클라이맥스는 요한복음 6장 37절,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입니다. 이 말씀이 그의 영혼에 거대한 빛처럼 임하여, 그를 괴롭히던 모든 의심과 정죄의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구원의 확신이 자신의 감정이나 노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 함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천로역정>은 성경적 비유와 인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은 성경이며, 그가 ‘해석자의 집’에서 배우는 교훈들, ‘아폴론’과의 싸움에서 사용하는 ‘성령의 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버니언에게 성경은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 죄를 깨달았고, 성경을 통해 구원을 확신했으며, 성경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3. 고난의 풀무에서 단련된 기독교 정체성: 순례자, 설교자, 그리고 이야기꾼

이처럼 치열한 영적 투쟁과 말씀과의 씨름을 통해 형성된 버니언의 기독교 정체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순례자(Pilgrim)’**였습니다. 그의 회심 경험은 이 땅에서의 삶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하늘의 성’을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여정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천로역정>의 구조 자체가 바로 이 순례자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안락한 정착이 아니라, 수많은 위험과 유혹(허영의 시장, 의심의 성,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 등)을 통과하며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버니언에게 구원은 단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믿음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양심을 따르는 설교자(Preacher of Conscience)’**였습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얻은 구원의 확신은 그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교회의 허가 없이는 설교할 수 없다는 법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무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베드퍼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감옥은 그의 사역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손에 펜을 들게 하여 <천로역정>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투옥은 국가의 법보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양심에 순종하고자 했던,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셋째, 그는 **‘천상의 이야기꾼(Heavenly Storyteller)’**이었습니다. 버니언은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신학적 교리들(칭의, 성화, 유혹, 인내 등)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이는 그가 신학을 머리가 아닌 삶으로, 온몸으로 겪어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언어는 킹 제임스 성경의 깊고 장엄한 문체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그의 상상력은 성경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복잡한 교리를 단순한 알레고리로 번역하여 평범한 사람들, 글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구원의 길을 이해하고 소망을 품게 하는 위대한 소통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존 버니언의 삶은, 한 명의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빚어져 어떻게 위대한 신앙의 순례자요 증인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안락한 신앙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란 끊임없는 영적 전투와 자기 성찰,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형성되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우리 각자의 삶 역시 ‘천로역정’이며, 우리 모두는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입니다. 버니언처럼 우리도 의심의 성에 갇히고 절망의 거인을 만날 때, 오직 약속의 말씀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열쇠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